때는 봄. 친구의 결혼식. 나는 왼손에는 빨랫감이 잔뜩 든 옷가방, 오른손에는 노트북가방을 들고 있었다. 수습기자였던 나는 모처럼 ‘24시간 휴식’을 명받은 상태였다.

덕분에 절친의 결혼식에 딱 맞춰 참석은 할 수 있게 됐지만 경찰서에서 내내 입고 자고 뒹군 꼬질꼬질한 파란색 바람막이 점퍼는 여느 하객들의 시선을 끌기 충분했다. 머쓱하게 자리에 앉으며 생각했다. ‘수습만 끝나면 다 괜찮아지리라...’

영원할 것만 같았던 수습 기간에도 끝은 오나니. 가장 먼저 벗어던진 건 투박한 백팩이었다. ‘나도 이제 여느 커리어우먼들처럼 멋진 숄더백을 매겠어!’ 하지만 우리의 필수 장비인 노트북에 카메라, 녹음기까지 잔뜩 들어간 숄더백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고 덩달아 내 어깨도 비명을 질러댔다.

결국 사흘만에 다시는 안 맬 줄 알았던 백팩을 다시 집어들었고 그 백팩은 4년차에 접어든 지금까지 내 어깨를 지키고 있다.

큰 맘 먹고 산 구두. 하필이면 ‘개시’한 날 일이 터졌다. 수해 현장에 가라는 지시가 떨어진 것. 물이 채 빠지지 않은 바닥은 질척였고,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비닐하우스 안은 40도를 웃돌면서 습해진 옷들이 몸에 마구 감겼다.

물에 잠긴 멜론이며 수박들이 그대로 뭉개진 사이를 정신없이 다니다 문득 발밑을 내려다보니... 아, 나의 새 구두님은 그렇게 갔습니다. 지금은 가게에 가도 구두보다 운동화가 더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날은 ‘소개팅’ 날이었다. 상대가 충남에서 소를 키우는 집안의 자제분이라고 하던가. 문득 주중엔 기사 쓰고 주말에 소 여물을 주는 내 모습을 떠올리며 복잡 다감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지만 ‘기자는 드세 보여서 싫대’ ‘여기자는 듀오에서도 등급이 해녀 밑’이라는 주변의 말들을 떠올리며 이내 ‘필승’을 다짐했다. 이미 회사 일정 등으로 두어번 펑크를 냈던 터라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다. 운명의 시간 1시간 전. 전화벨이 울린 건 그가 아니라 캡이었다.

1시간 뒤 내가 달려간 곳은 소개팅 장소가 아닌 경찰서, 그 후로 소 부잣집 아들래미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사건기자’라는 이름으로 4번째 봄을 맞는다. 그 동안 깨달은 건 드라마 속 ‘손예진’ 같은 사건기자는 현실에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흠, 직업이 아닌 얼굴이 문젠가?) 갈수록 털털한 옷차림에 말투도 걸쭉해지니 큰일이다. 하지만 정말 절감한 사실은, 외면이 아닌 내면도 ‘사건기자답게’ 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었다.

예측할 수 없는 일에 스트레스도 받고, 문득 힘들어질 때도 있지만 그 토록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 건지. 이제는 사건기자라는 매력적인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내면의 열정이 더 돋보이는 기자가 되고 싶다.

<2013년 4월 25일 협회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