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말. 연합뉴스 대전충남취재본부를 떠나 본사 사cm마와리로 첫 출근한 날, 환영식은 고사하고 새벽까지 광화문광장 농민시위 현장을 지켜야했다.

서러운 마음에 윤덕 선배에게 전화했더니 돌아온 대답은 “이년아, 거기도 사람 사는 데야. 지금은 낯설어도 시간 지나면 다 적응하게 돼 있어"

맞다. 내가 원래 서울 사람인데, 대전 근무 2년여 만에 잊고 있었다. 지금도 대전이 고향인 후배 만나 얘기해보면 대전의 맛집도, 경치 좋은 곳도 내가 더 많이 알고, 그리움도 더 큰 것 같다.

2003년 대전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한 것은 사실‘불순한 의도’가 깔려있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구로 지내다 2002년 여름 사귀기 시작한 남자친구가 병역특례를 마치고 카이스트로 복학할 시점. 남자에 눈이 멀어 부모, 형제 다 두고 연합뉴스 대전본부를 지원해 합격했다. 남자친구가 당연히 연구단지에 들어가리라 생각했고, 대전이 내 평생 터전이 될 줄 알았다.

굳이 성별로 구분하자면 난 연합뉴스 대전본부 역사상 첫 여기자다. 가족 같은 선배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으며 충남경찰청을 출입했고, 당시 김준호, 정문영, 김석민, 류철호, 최두선 선배 등등 출입기자들과 완벽한 호흡을 맞춰 신나게 기사 쓰고, 신나게 놀고먹었다.
방문홍, 황정인 계장 등 대전 5개서 형사계장들과도 마음이 맞아 장태산에 다같이 MT를 갈 정도였는데 서울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현금수송차 도난사건부터 100년 만의 폭설대란, 천안 여고생 실종사건, 서천 카센터 살인사건, 김승연 조부 유골 도굴사건까지 별의 별 사건을 경험하면서 참 많이 배웠다. 일은 또 어찌나 많은지, 같은 기간 전국에 흩어진 연합 동기들과 비교 해봐도 내가 쓴 기사가 월등히 많았다.

당시 내 기사에서는 술 냄새가 많이 났다. 술자리에서 주워듣고 취재해 썼거나, 종종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썼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렇게 마시고 싶어도 시간이 없고, 몸도 안 따라주고, 딸린 식구가 있어서 어렵다.

선화동 도청 옆 ‘참새집’에서 비오는 날 젓가락 두드리며 두부에 막걸리 마시고, 노트북 가방에 술 병 넣어 판사방에서 먹고, 벚꽃 피면 신탄진 지나 대청호 근처에서 백숙에 말아먹고, 복날에는 다 같이 기사 안 쓰고 수통골에서 개고기에 또 말아먹고...아침에는 귀남 언니가 기자실에서 김치 넣고 얼큰하게 끓여주는 라면으로 해장하는 게 소소한 행복이었다.

김시헌, 김대중, 김화영, 서주석, 이인회, 정세영, 돌아가신 이광옥 선배 등등 우리 회사, 남의 회사 구분 없이 든든한 선배들이 뒤를 받쳐주었기에 뭐든지 소신껏 할 수 있었다.

더 없이 좋았던 대전생활, 짧아서 더 미련이 남나보다.

현대차 전주공장을 지원했던 남자친구는 난데없이 양재동 본사발령이 났고, 기약 없이 주말 커플을 하다 본사 사회부에서 오라고 하니 고민 끝에 짐을 쌌다.

“반짝 반짝 닦아서 보내니 서울에서 마음껏 펼쳐봐” 끝까지 등 두드려준 연합 선배들께 고맙고 또 고맙다.

서울에 와서도 일복이 많아‘박근혜 피습사건’,‘김승연 보복폭행 사건’담당이라 한 달씩 집에 못 갔고, 대검찰청 기자단 간사를 맡았더니 ‘박연차-노무현 사건’이 터져 석 달간 죽을 고생을 했다. 하지만 대전에서 보고 배운 게 있기에 여러 번 물 먹으면, 나도 한 번 먹이고 치고받으면서 꿋꿋이 버틸 수 있었다.

2010년에는 요르단에 1년간 단기특파원을 다녀왔고, 2011년에는 나와 똑같이 생긴 딸을 낳아 올해 네 살이 됐으며, 2012년에는 뉴스Y 사회부로 파견돼 20개월째 마이크를 잡고 있다.
연합 대전충남본부를 선택했던 일 말고는 어느 것 하나 내가 예상했거나 의도한 게 아니다. 원래 인생이 이런 건가 보다.

추억을 곱씹다 보니 대전 선배들이 그립다. 그 시절의 나도 그립다.